연지 스커트

제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10년 전이다.팍왕소 작가라면 글 한편 완성하는 데 충분하지 않나 나의 재능 없음을 탓하고 가슴에만 품고 있는 이야기를 용기 내서 꺼내려구.132년 전에 강원도 삼척에 김·게임의 팬이라는 아이가 있었다.어려서부터 영국 특에서 도리가 밝고 부모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어린 시절은 보통 여자들처럼 어머니에게 바느질도 배우고 길쌈도 돕고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지냈다.어머니는 너무 얌전한 진정한 계화.을 언젠가는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으로;”우리 케이카는 가끔 어떤 사람이 시집?””아이, 어머, 정말”뺨이 붉어졌다 케이카는 쑥스러워서 그토록 달아났다.시간이 지나고 진정한 개화에는 아래의 마을에 글을 많이 배운 임·홍철과 혼담이 오가며 어른들이 결정을 내리자 결혼사가 열렸다.그 당시는 모두 그렇듯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결혼했지만 4세 연하의 신랑은 글을 많이 쓴 탓인지 아는 것도 많고 계화. 마음을 점점 뛰게 했다.결혼 1년 만에 가사의 본전이라는 예쁜 딸도 낳고 딸의 유희에 밖에 나온 신랑도 빨리 돌아오고 아이를 운반하는 등 아주 신식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며 시부모나 남편, 아이의 웃음 소리에 부엌에서 일하던 신부의 시계화도 행복하고 눈물이 나왔다.그런데 이어 딸을 낳게 되어서 장인의 차가운 눈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시어머니는 “이 집을 끊어 놓으려고?””아들이 하나도 낳지 못하는가?””쯔쯔…””이런 학대를 주저 없이 아이의 젖을 먹는 것조차 숨어 몰래 먹이면서 슬픔을 견뎌야 했다.그 사이 졸개의 의리의 형제들은 아들을 낳고 집의 제사 때도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의 젖을 먹이고 있다고 딸이지만, 계화.는 등에 아기를 업고 장녀를 달래며 부엌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다.그런데 세상은 정말 공교롭게도 아이가 또 생길 이번에도 또 딸을 낳았다.서먹서먹한 시어머니는 “문을 닫습니다”(이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마라)이라고 한다.딸 3명을 낳고 모든 집안 일을 맡고 밤 늦게까지 하고 밤에야 울고 피곤한 순진한 딸들의 잠든 모습을 보고얼마나 많은 밤을 울고 지냈는지 몰랐다.그러나 마음씨 좋은 케이카는 모두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에 아침 일찍, 아직 집안 일이 시작되기 전에 정성스럽게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부처님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다, 예.””그리고 아들 하나 꼭 살펴보세요.”” 이렇게 빕니다, 예.”계화. 진심이 부처님에 도착했는지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지금은 할 길을 다한 듯 다시 남편의 부모도 분노도 덜어주는 손녀들을 아끼고 달라는 기대에 개화는 복이 아이를 껴안았다.그런데 아들이 백일이 지나면 시어머니는 손자를 안고 안방에 올랐다.귀중한 손자가 며느리의 가슴에 있으면 복이 달아난다는 이유에서였다.딸을 3명도 낳고 모유도 별로 나오지 않는 어머니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동네 젊은 어머니에게 데리고 가서 모유를 먹이기도 했다.아들을 가까이 두고도 안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누가 알겠나?그런데 케이카에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는 것은?그 심한 시집살이를 그래도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견뎠지만 아들을 보고아들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긴 남편이 동네에 사는 작은 아내를 얻은 것이었다.케이카는 더 이상 견디는 힘도 없고 미래도 없었다.남편이 한없이 밉고 증오스러웠지만 얼굴도 보이지 않고 그저 먼 발로 상냥하고 영국 특히 자라는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세월이 흐르면 어른들은 죽고 아들을 만나기로 얻은 두번째 아내는 딸 둘을 낳다.혼자 아이들 4명을 치고 결혼하게 집안의 대소사, 제사를 담당하는 카츠라 하나 씨와 다르고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집에 안 돌아오는 남편을 가진 여성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나중에 손자를 보고 돌아온 남편에게 너무 긴 세월 동안 응어리의 깊은 개화 씨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악랄한만 나왔다.지금은 남편과의 대화는 끊어진 지 오래이고, 같은 집에서 살더라도 남 같은 관계에 있는 가쓰라 하나 씨는 며느리와 옛날 이야기를 하며 손자를 보다 편하게 지내던 어느 날 며느리를 불렀다.”에미, 내가 죽는다면, 나는 삼베 옷을 입히지 않고 옷장 서랍에 넣어 둔 붉은 치마를 입혀서 보내야 한다””네?엄마, 무슨 일이죠?왜 그런 말을…….””그 노인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걱정했지만 내가 저승으로 갈 때 시집 올 때 입던 붉은 치마 입고 가고 있으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시어머니의 원한 어린 유언을 들은 며느리는 가슴이 벅찼다.카츠라 하나 씨는 삼척에서 죽삼척에 묻히고 흥철 씨는 아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고 서울에서 살고 죽었으니 죽어도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10년 전에 후손들이 조상의 무덤 아이바의 이장을 하면서 마침내 만나게 됐다.

제가 대학 여성학 시간에 본 여성 잔혹사 <물레, 물레> 영화만큼 너무나 가혹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쌍한 계화님의 이야기를 글로라도 살려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직하고 가슴 아픈 영원한 사랑에 대해 존경을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